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작중 행적 (문단 편집) == 죽음 == [[시바 성역 회전]]에서 강화를 택한 라인하르트는 공화정부 요인들과 함께 [[하이네센]]으로 돌아왔지만, 입원한 [[아드리안 루빈스키]]가 자살하면서 뇌와 연동되어 있던 폭탄이 폭발, [[하이네센폴리스]]를 엉망으로 만들고 만다. 시가지에서 발생한 화재는 라인하르트가 기거하는 구 동맹 국립미술관 임시 총본영까지 들이닥쳤고, 비텐펠트는 라인하르트에게 퇴거를 권했다. 하지만 [[겨울장미원]]을 좋아했던 라인하르트는 겨울장미원을 내려다볼 수 있는 숙소에서 퇴거하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비텐펠트와 부하들은 페잔에서 황후와 황자가 기다린다며 라인하르트를 의자째로 들어 [[겨울장미원]]으로 이동했고 라인하르트는 거기서 바로 랜드카를 타고 안전지대로 피신했다. 이렇게 목숨을 건진 라인하르트는 6월 20일, 정식으로 [[이제르론 혁명군]] 사령관 [[율리안 민츠]] 중위와 회견을 가졌다. 율리안은 헌법 제정과 의회 개설을 통한 민주화를 주장했고, 라인하르트는 자신의 뒤를 이어 제국을 통치할 황후 힐다에게 율리안의 견해를 들려달라며 페잔으로 가는 길에 동행해줄 것을 요청했다. 율리안은 수락했고 6월 27일 황제와 공화정부 사절단은 전함 [[브륀힐트(은하영웅전설)|브륀힐트]]를 타고 페잔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페잔에 돌아오고 일주일 뒤 라인하르트의 병세는 극도로 악화되었다. 40도 이상의 고열이 지속되었고 종종 의식을 잃었으며 심지어 7월 26일에는 잠시나마 호흡이 멈출 정도였다. 그리고 오베르슈타인은 왕조의 존속을 위해 곧 죽을 황제를 미끼로 [[페잔(은하영웅전설)|페잔]]에 잠입한 지구교도들을 소탕하려고 했다. 황제의 병환은 회복세이며, 병이 나으면 [[지구교]]의 총본산인 [[지구(은하영웅전설)|지구]]를 파괴하겠다는 헛소문을 유포했는데 여기에 낚인 지구교도들이 마지막까지 남은 행동대원들을 모아 임시 황궁을 습격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른 제독들은 신하 된 도리로 황제를 미끼로 쓰냐며 격분하여 서로 싸우기 직전까지 갔지만, [[나이트하르트 뮐러]]의 중재로 일단 지구교도 소탕에 집중했다. 벨제데 임시 황궁에 침입한 지구교도들은 제국군 헌병대와 율리안 일행에 의해 소탕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오베르슈타인이 지구교도가 투척한 사제 폭탄에 의해 사망했다. 그러한 사실도 모른 채 죽어가던 라인하르트는 죽기 직전 몇몇 조치를 내렸다. 우선 상급대장 6명을 제국원수에 서임했으며, 원래 원수였던 미터마이어는 제국수석원수라는 칭호를 내렸다. 단, 이 조치는 라인하르트가 죽은 뒤 힐다의 명의로 하라고 지시했다. 라인하르트의 이러한 조치로 원수에 오른 이들은 훗날 '[[뢰벤브룬 칠원수]]'라고 불리게 된다. 그리고 라인하르트는 [[안네로제 폰 그뤼네발트]]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키르히아이스의 머리카락이 담긴 팬던트를 안네로제에게 주었으며, 미터마이어에게는 처자식을 임시 황궁에 데려와 달라고 부탁했다. 제국의 모든 중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라인하르트는 아들 알렉산더 지크프리트에게 대등한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며 알렉산더와 [[펠릭스 미터마이어]]가 만나도록 했다. 두 아이는 서로가 마음에 들었는지 떨어지려 하지 않으며 울음을 터트렸고, 라인하르트는 펠릭스에게 황자와 친하게 지내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오베르슈타인의 행방을 물었는데, 힐다가 오베르슈타인은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자리를 비웠다고 돌려서 설명하자 라인하르트는 "그자가 하는 일에는 언제나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으니"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유언으로 모든 일을 힐다에게 맡기며, 입헌체제로 바꾸고 싶다면 그래도 좋고 알렉산더 지크프리트에게 역량이 없다면 [[로엔그람 왕조]]는 남겨둘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병세가 더 악화된 라인하르트는 한동안 잠에 빠졌다가, 마침내 살짝 눈을 뜨고 힐다에게 속삭였다. [[파일:attachment/110.004239.jpg|width=600]] >'''"우주를 손에 넣으면...모두 함께..."''' > ---- >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10권 <낙일편>, 김완, 이타카(2011), p.333 그 말을 남긴 라인하르트는 두 번 다시 눈을 뜨지 않았다. 알렉산더 지크프리트가 울 때까지 방에는 침묵이 감돌았고, 힐다는 라인하르트는 병환에 쓰러진 것이 아니라 천수를 누렸다고 말한 뒤 눈물을 흘렸다. '''신 제국력 3년, 우주력 801년 7월 26일 23시 29분.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그렇게 쓰러졌다. 향년 25세였고, 그의 치세는 겨우 2년이었다.'''[* 실질적으로 황제처럼 행동했던 기간까지 다 합쳐도 3년 9개월 정도.][* 우연인지 그와 대척점에 서 있던 민주공화주의 진영의 수장이었던 욥 트뤼니히트가 최고평의회 의장직으로 재직한 기간도 2년이었다. 실질적인 통치기간은 3년이지만 이중 1년은 권한대행 격이었다.] 너무나도 젊고 찬란히 빛날 시기에 그는 그렇게 사그라들었다. 사후에도 그의 검소함을 드러내듯이 라인하르트의 묘비에는 거창한 묘비명같은 건 없었다. 오직 조촐하게 생몰년도 및 즉위 날짜와 '카이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라고만 새겨졌다. 텅 빈 은하제국의 옥좌에는 장남 알렉 대공이 국장이 치러진 이후 즉위했으며, 힐다가 섭정황태후를 맡아 [[로엔그람 왕조]]를 더욱 발전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